안녕, 얘들아. 나는 흙집의 생쥐하고 냇가의 개구리하고, 논가의 메뚜기하고 친구하는 『강아지똥』 이야기를 쓴 권정생 할아버지란다.
그렇게 징그러운 친구도 있느냐고? 있다마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이라도 겨울이 오면 추워하고 비가 오면 좋아하고 가을이 오면 배가 부른 것이 같지 않니. 너희는 살아있는 생쥐랑 눈 마주쳐본 적이 있니? 작은 개구리가 손에서 폴짝 뛰는 느낌이 어떤지 아니? 메뚜기가 뛰는 논의 아름다움을 느껴본 적은 있니?
사람이란, 자연 속에서 작고 친근한 생명들이랑 친구하면서 새랑 짐승들이랑 얘기도 하고, 흙냄새 거름냄새 풀냄새 맡으며 땀도 흘려보고 그래야 진짜 건강하고 힘찬 삶을 살 수 있단다. 씨 한 톨 심어 놓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마음, 어미 닭이 품은 알에서 병아리가 깨기를 기다리는 마음, 보리 이삭이 패고 씨알이 누렇게 익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 이런 마음을 소중하게 아끼고 지키는 일이 제일로 중요하지.
어른들이 맨날 책 읽어라, 학교 가라, 공부해라 잔소리해서 얼마나 싫으니. 할아버지는 어린이 책을 쓰는 사람이었지만, 너희가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책을 읽으란 말이 나오질 않는단다. 바람 맞으며 뛰노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다고 그 순간을 뺏을 수 있겠니!
그래도 왜 어른들이 책을 읽으라고 하느냐면, 너희도 언젠가 쑥 자라 어른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려면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르게 알아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그래야만 지금의 착하고 고운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단다. 정의로운 게 무엇인지, 용감한 게 무엇인지, 아름다운 게 무엇인지 알고 따뜻한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다 커서도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 수 있단다.
다들 어떤 어른으로 자라고 싶은지, 꿈이 얼마나 많으냐. 과학자도 되고 싶고 대통령도 하고 싶고 예술가도 되고 싶지 않으니? 그래 너희는 진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너른 세상을 보고 이게 좋을지 저건 어떨지 이것저것 다 해보아서 진짜 즐거운 일을 찾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단다. 그래도 어떤 일을 하든지 제일 처음으로는 사람다워야 하는 법이란다. 훌륭한 과학자도, 대통령도, 예술가도 좋은 사람이어야 가능하단다. 좋은 사람은 어린이의 마음을 갖고 더 낮고 어두운 곳을 밝은 눈으로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지.
하나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TV에서, 컴퓨터에서, 어른들이 지나가다가도 돈이 전부다, 크고 강한 게 최고다 하더라도 그렇게 믿으며 살아선 안 된다. 친구랑 비교해가며 무엇이 낫고 부족한지 따지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들판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늦게 핀 작은 꽃이라고 해도 나비가 날아든단다. 늦고 작은 세상은 늦은 대로, 작은 대로 아름다운 법이란다.
그래도 마음이 초조하고 힘이 들 땐 하늘을 바라보렴. 드넓은 밤하늘 보면서 바람도 맞아 보렴. 그럼 우리는 얼마나 작은지, 우리의 걱정과 욕심은 또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느껴진단다. 아직 하늘 바라보는 것은 돈 내라는 사람이 없으니 참 다행이지 않니. 가난한 사람에게도 하늘은 똑같이 너그럽단다. 작게, 느리게, 꼴찌로 뒤처져 살아도 자유로운 삶이 있다. 자유로운 꼴찌는 그만큼 떳떳하단다.
밤하늘 반짝이는 별을 볼 때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희망을 마음껏 떠올려 보아라. 그렇게 소망 빌 때는 꼭 이웃도 떠올리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혼자 사는 나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 학교에서 힘 약해 놀림 받는 친구, 바다 건너에 학교 마음대로 못 가는 꼭 너희만한 아이들, 함부로 키워지고 버려지는 동물들, 살 자리 잃는 숲속 생명들, 길가에 핀 들꽃과 기어 다니는 벌레 한 마리까지. 너희가 아직 어려 나눌 게 없다 해도 마음만큼은 언제든 나눌 수 있단다. 그렇게 나누는 사람 되면 너희가 어디서 무엇 하는 사람이든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거란다. 하찮은 강아지 똥도 민들레 꽃에게 가진 것 모두 나눌 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 않더냐! 이 할아버지의 당부를 잘 기억해서 작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항상 궁금해하고 염려하고 배려하고 감싸줄 수 있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자라야 한다.
- 이 땅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권정생 할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