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기다리는 것들
정은귀(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하늘 색깔이 오늘 좀 다른 것 같아. 좀 연한 푸른색이야. 겨울 지나고 곧 봄이 올 것 같 네. 시간이 어찌 이리 빠른지.” 오후에 부모님과 나눈 전화 통화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시 네요. 부모님은 팔십 대 중반이세요. 우리 어린이들에게는 상상이 안 되는 까마득한 나 이지요. 우리 어린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 걸 테니까요. 아버지 말씀을 들으며 기다림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기다림’은 누구나에게 아련하고 소중한 단어인 것 같아요. 어린 날에는 아버지가 늦 은 퇴근길에 사 오시는 과자를 기다렸고, 짜장면 먹으러 가는 생일날을 기다리기도 했 고, 아침에 눈을 뜨면 머리맡에 놓여 있던 세계문학전집 같은 깜짝 선물을 기다리기도 했지요. 지금은 월급날을 열심히 기다리는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지만요. 우리 어린이들 은 이 계절,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 이 쓴 시를 하나 읽어보려고 해요.
Bee! I’m expecting you!
Was saying Yesterday
To Somebody you know
That you were due—
The Frogs got Home last Week—
Are settled, and at work—
Birds, mostly back—
The Clover warm and thick—
You’ll get my Letter by
The seventeenth; Reply
Or better, be with me—
Yours, Fly.
꿀벌아! 널 기다리고 있어!
어제가 말하고 있었지
네가 아는 어떤 이에게
네가 올 때가 되었다고—
개구리들은 지난주 집에 왔고—
자리 잡고, 일하고 있어—
새들은, 대부분 돌아왔고—
클로버는 따뜻하고 도톰해—
넌 내 편지를 17일쯤
받게 될 거야; 답장해 줘
함께 있으면 더 좋지—
너의, 파리로부터.
“꿀벌아, 널 기다리고 있어!” 첫 줄부터 깜찍한 톤으로 시인은 꿀벌에게 편지를 씁 니다. 계절이 바뀌었나 봅니다. 개구리들은 지난 주 다시 돌아와 개굴개굴 계절을 알 리고 있나 봅니다. 새들도 재잘재잘 지저귀고 있고, 클로버는 따뜻하고 도톰하다고 해요. 계절이 바뀌면서 새로워지는 풍경을 실감나게 전하네요. 시인은 우리가 잘 살피지 않는 주변을 세심히 살피는 눈을 가진 사람 같아요. 길을 걷다가 돌멩이가 신기하다며 돌멩이를 열심히 주워오던 어린 날 사촌동생 생각이 나요. 그 코흘리개 꼬맹이는 돌을 주워온다고 야단을 맞았는데, 그 아이는 어쩌면 시인의 눈을 갖고 있었던 건 아 닐까요? 길을 걸을 때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호기심. 변화를 알아채는 것. 이런 것이 다 시의 마 음이 아닐까 해요.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시간, 우리 어린이들은 무얼 기다릴까요? 누구에게 어떤 편지 를 쓸까요? 대상이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어요. 디킨슨이 파리가 되어 꿀벌에게 편지 를 썼듯이 다정하게 무언가를 부를 수 있으면 되거든요. 저는 어제 사라진 색연필을 애 타게 찾고 있었어요. 그림을 그리려고 색연필을 찾는데 늘 있던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 진 거예요. 그래서 이런 시를 써보았어요. “색연필아, 널 기다리고 있어, / 오늘이 말하고 있네... / 손도 준비되어 있고, / 앞에 예쁜 꽃도 있어. / 어서 돌아와. 네가 필요해. / 너의, 도화지로부터.”
도화지가 되어서 이렇게 편지를 썼어요. 마음으로 시를 쓰면서 책상 정리를 하니 숨어 있던 색연필이 짠, 나타났어요. 마치 편지가 색연필을 불러온 것처럼 말이지요.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이렇게 신나는 일이에요. 지금은 없기 때문에 간절하고 애타지만 내일은 있을 것이기에 그 기다림은 멋진 기대이고, 희망이지요. 새 학기를 맞아 새 노트를 사고, 새 친구를 기다리는 일,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그려보는 일도 멋진 기다림이고요. 새 책 앞에서 설레는 마음도 기 다림이고, 어제와는 다른 하늘을 기다리는 일도 참 좋아요. 우리, 각자의 다른 기다림 속에서 저마다 따스하고 행복한 봄을 그려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