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이야기하기
이오덕
- 하느님,
제가 오늘 학원 안 가고
가지랑골 가서 딸기 따먹고
놀았어요.
- 그래, 하고 싶은 말 있거들랑
더 해 봐라.
- 엄마 말 안 듣고 돌리빼기했으니
죄 지은 거지요. 부디 용서해 주셔요.
작년 여름 우리 선생님 따라
시골 가서 뻐꾸기 소리 듣고 꾀꼬리 소리도 듣고
딸기 따먹고 놀았지요.
그래 어제는 이웃 사는 방구 아저씨가
가지랑골 가면 딸기가 억수로 있다 하잖아요.
그 말 듣고 용식이랑 의논해서 갔어요.
- 그래 딸기 많이 있더냐?
- 있다뿐입니까. 얼마나 새빨갛게 잘 익었는지
불 같았어요. 딸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 같았어요.
또 얼마나 달고 맛이 있는지 한 움큼 따서 입에 넣고
또 한 움큼 따서 입에 넣고 또 따서 넣고,
그런데 그 맛있는 딸기를 아무도 따먹지 않아요.
하느님, 어제 학원 안 가고 돌리빼기한 것
용서해 주시는 거지요?
- 용서하다뿐인가. 내일도 가서 따 먹어라!
- 뭐라구요? 내일도 또 돌리빼기하라구요?
엄마 말 듣지 말라구요?
- 그래, 엄마 말이라고 무엇이나 다 들어야 하는 것
아니다. 잘못된 말은 안 들어도 된다.
- 그럼 딸기 따먹고 노는 건 잘한 거네요!
- 잘한 거다. 그렇게 산과 들에 가서
열매도 따먹고 새 소리도 듣고,
나무하고 벌레하고 친한 사이가 되는 것이
진짜 공부를 하는 것이란다.
- 새소리 듣는 게 공부라고요? 딸기 따먹는 거,
나무하고 풀하고 벌레들하고 같이 노는 거,
그게 공부라고요?
- 이 세상에 그만큼 좋은 공부가 없다.
그런 공부를 해야 깨끗하고 바른 사람
건강한 사람이 되지.
나는 네가 오늘 그 산골에 가서
몇 시간 공부한 것이 너무 반가워
너에게 상을 주고 싶었단다.
- 상을 주신다고요!
정말입니까?
- 정말이다.
그런데 나는 벌써 너에게
상을 주었단다.
- 상을 주셨다고요?
무슨 상을 주셨습니까?
저는 받지 않았는데요.
- 분명히 너는 내가 주는 상을
받았다.
자, 네 오른손을 내어 보아라
네 손등에 찔린 가시 자국,
네 손목, 팔뚝에까지 할퀸
딸기나무 가시 자국 새빨간 그 피의 흔적
그리고 네 옷자락에 물든 새빨간 딸기물,
네 입술 네 두 볼에 묻은 빨간 딸기물,
그게 바로 내가 준 상장이고 내가 준 상이란다.
- 히야아! 이게 하느님이 주신 상장이라고요!
세상에 이런 희한한 상이 있다니!
- 그렇다. 너는 그 상장으로 이제부터 정말 훌륭한
우등생이 된단다. 부디 그 상장을
앞으로도 자주 받도록 해라.
- 히야, 이 가시 자국이
하느님께 우등에 뽑혔다는 상장이라니!
얼씨구 좋구나 얼씨구 얼씨구.
내일도 모레도 우리 모두
산으로 가자. 들로 가자.
*이오덕 선생님(1925~2003)
이오덕 선생님은 42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신 선생님입니다. 어린이는 시험을 잘 치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 자연 속에서 뛰놀면서 살아가는 것이 더 어린이답고 훌륭하다고 하시며, 어린이를 위한 시와 글도 많이 남기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