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글쓰기
유영종(인하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햇살이 나날이 더 따뜻해지고 있어요. 곧 여름, 그리고 신나는 방학이 올 거예요. 그런데 방학에 늘 즐거운 기억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방학하면 지겨웠던 과제가 생각나요. 지금도 그런 과제를 내주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일기 쓰기 말이에요. 방학 끝나기 며칠 전부터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느라 끙끙 멨던 기억이 생생해요. 여러분도 일기 쓰기가 싫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일기 쓰기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억지로 쓰는 일기가 아니라면 말이에요. 이번에 소개드릴 책은 진짜 일기장이에요.
『안네의 일기』에는 안네 프랑크라는 10대 초반의 소녀가 2년 동안 썼던 글들이 담겨 있어요. 안네는 네델란드에 살던 유대인이었어요. 2차 세계대전 동안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 나치 정권에 학살당한 이야기는 여러분도 들어봤지요? 안네 가족도 독일 비밀경찰을 피해 은신처에 숨어 지내야 했어요.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말이에요. 2년 동안 넓지 않은 장소에서 8명이 꼼짝없이 갇혀 살아가는 걸 상상해 보세요. 새로운 이야기도 곧 떨어지고, 조그만 일로도 짜증이 나서 자주 충돌할 거예요.
안네에게 답답하고 힘든 은신처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것은 글쓰기였어요. 안네는 자신의 일상과 생각들을, 부모님, 언니, 그리고 같이 숨어있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불만까지도 일기장에 솔직하게 적었어요. 키티라고 이름붙인 일기장은 안네가 “가슴에 묻어둔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어요. 또, 일기장에 글을 쓰며 안네는 평화와 자유를 희망하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어요. 비밀경찰에게 끌려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도 전쟁이 끝나면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며 살아야 할 이유도 계속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안네의 일기』는 전쟁의 진짜 모습도 생각하게 해 주어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어요. 여러분도 뉴스나 유튜브를 통해 전쟁의 영상과 사진들을 보았지요?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탱크가 움직이고, 폭탄 떨어진 장소에서 커다란 불길이 일어나는 것 말이에요. 하지만 폭격 장면 같은 것만으로는 전쟁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어요. 그건 꼭 비디오 게임이나 영화 같잖아요. 이런 전쟁 이미지를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자주 보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무감각해지기도 해요. 전쟁 피해자들이 비현실적인 세계의 사람들처럼 느껴지기 때문에요. 그래서는 사람들의 불행에 완전히 공감하기 어렵지요.
『안네의 일기』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전쟁이 그려져 있어요. 안네가 숨어있던 도시는 전쟁터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어요. 가끔 전투기 공격도 있었지만 전쟁의 비극은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일상적인 것에 있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집 현관문이 나무막대와 못으로 막혀있고, 아이들의 부모가, 한 가족 전체가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대요. 나치의 비밀경찰에 잡혀 언제든 강제수용소로 끌려갈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친구들이 이 추운 밤 어디선가 독일군에게 얻어맞아 쓰러지고, 개천가에 뒹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것도 전쟁이 가져온 비극이지요.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에 느끼는 관심과 걱정들이 솔직하게 적혀있는 『안네의 일기』는 전쟁 피해자들이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주어요. 안네는 결국 독일 비밀경찰에 잡혀갔어요 하지만 『안네의 일기』는 독자들이 전쟁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도록 만들었어요. 다시는 안네가 겪은 것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에요.
『안네의 일기』는 평화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어요. 하지만 안네는 일기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어요. 어른들은 자기만의 커다란 걱정 때문에 안네의 고민과 상처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때 일기 쓰기는 좋은 친구의 우정처럼 안네를 위로해 주었지요. 이글을 읽는 여러분도 종종 안네처럼 느끼지 않나요? 그럼 자신을 위한 비밀일기를 써보세요. 『안네의 일기』를 읽으면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과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저도 여러분의 글쓰기를 응원할게요.